접속 [소설을 쓴다]


 이삿짐을 모두 꾸렸다. 집 주인이면서 친구인 L은 그날 밤, 집으로 오지 않으며 내일 내가 집을 나갈때 열쇠를 두고 문을 잠그고 나가라는 메세지를 남겨 둔 상태였다. 
우리가 이렇게 갈라서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먼 타국에서 큰 가방 하나 들고 나오는 내가 혹여라 길을 헤맬까봐, L의 집을 찾지 못할까봐 L은 구태여 자신의 남자친구에게 부탁을 해 먼 공항까지 나를 태우러 왔었다. 
그건 낯선이에 대한 그녀의 배려였다. 
하지만 오늘에 와서는 나는 그런 배려마저 거절 하고 싶었고, 텅 비워버린 내 방을 보고 있자니 차라리 L이 이 모습을 보지 않는편이 나을꺼라고 생각했다. 

집 근처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주유소와 편의점이 하나 있었는데, 술 마시고 혼자 청승을 떠느니 아이스크림이나 먹으며 속을 달래볼까 싶어 집을 나섰다. 
밤에는 대체로 집에서만 지내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빛의 속도로 다녀오면 나의 '안전'을 내가 지킬 수 있을꺼라는 말도 안되는 위로를 하며 편의점에 도착했다. 
'바로 저거다!' 
베스킨라빈스가 있었다면 나는 아마도 쿼터 사이즈를 사다가 마구 퍼먹었을테지, 그래도 벤엔제리스가 저렇게 딱, 내가 원하는 사이즈가 있으니까!  
초코가 크런치로 마구 씹히는 녀석을 골라들고 다시 빛의 속도의 걸음 시동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흠, 달다. 

아주 달다. 

넌 이렇게 달구나 근데, 나 외롭다. 아주 외로워. 

거실에 켜 진 노란 형광등이 눈을 따갑게 만들었을까,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이런거 싫은데 아 싫다. 그만 해! 
아무렴 어때 지금 먹는 아이스크림이 있잖아. 그래. 그래. 이런날 도 있는거지 씨발, 까짓거... 
그건 그렇고...사람들을 인터넷으로 한 번 만나나 볼까? 그리고 나는 모 사이트에 몇 가지 이야기를 하고 친구를 구한다는 광고를 내보았다. 

 1. 한국에서 왔어요. 
 2. 영어로 대화할 친구를 찾아요. 
 3. 여자 남자 모두 상관없어요. 
 4. 혹시 관심 있으면 메일 주세요. 
 + 내 사진을 하나 업로드 하였다. 

계속 아이스크림을 퍼 먹으며 영화를 보았다. 
여전히 달았고 배는 불러왔고 마음은 허했다  
조회수나 알아볼까? 
'오 마 이 갓!' 
이게 뭐야,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이 봤네? 
이메일이 오기 시작했다. 물론 내개인 메일 주소를 통하지 않고 메일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내 개인정보는 보호(?)된 상태였다. 

1. 오 한국어 배우고 싶어요. 그리고 너 너무 귀여워, 연락해ㅐ
2. 너 나랑 결혼해서 여기서 살고 싶지? 
3. 난 애기가 있어. 뭐 그래도 니가 괜찮은면 연락해 
4. 난 의대생이고 곧 한국에 가는데 너가 괜찮으면 언어교환도 하고 싶어. 
.
.
.
.
별의 별 미친 놈의 메일까지 읽어보며 내 나름대로 메일들을 검수해 나갔다. 

띠리링 
(안녕, 나는 J라고 해. 나는 여행을 참 많이 했는데 한국은 아직 못가봤어, 나는 작년까지 여행을 하고 왔어. 이제까지 중미, 멕시코, 인도, 스리랑카, 일본 등 나라를 다녀보았는데 참, 나 한국은 못가봤지만 김치전이랑 돌솥 비빔밥을 무쟈게 좋아한단다!) 

응? 
오호라, 한국음식을 좋아한다고? 사실 한국음식을 좋아하는 외국 애들은 많은걸, 근데 여행을 참 많이 하는 사람이구나. 궁금하다. 어떤 사람일까? 왜 여행을 저렇게 다녔을까? 

- 안녕, 네가 한국음식 좋아한다니깐 반갑다. 난 J 라고 해, 지금 브리즈번이고 사실 내일 지금 사는 집에서 이사 할 일정이 있어. 넌 어디사니? 

-- 응 난 사실 지금 브리즈번이랑은 아주 먼 곳에 있어. 하지만 난 거기 살았기 때문에 잘 알아. 아직 브리즈번으로 언제 갈지는 모르지만 가긴 갈꺼야.  

- 아 그래? 뭐 아무튼 반가워. 네가 브리즈번 오면 같이 김치전이나 먹자. 

-- 좋지! 너무 먹고 싶어죽겠어. 넌 호주 여행 많이 해 봤어? 바다는 많이 갔니? 서핑은 해 봤어? 

- 서핑? 아니 아직 한번도 안해봤는데, 바다는 가 봤지만 수영도 아직 안해봤는걸? 

-- 아 그래? 에이 뭐야. 그럼 내가 가이드 해 줄께. 다음에 내가 바다쪽으로 안내하겠어. 가이드 비용은 톡톡히 치뤄야 할꺼야. 

- 하하. 알았어! 네가 가이드 해 준다면 뭐 나도 좋아! 


한시간이 넘도록 우리는 메세지를 주고 받았다. 
외롭다고 홀로 칭얼대더니 그 메세지를 주고 받는 사이에 내가 웃고 있었다. 
알지도 못하는 남자와의 한 시간 동안의 문자 메세지 때문에 웃고 있는 내가 우스웠지만 막연히 이 친구와 함께 할 코스트 여행이 기대 되기 시작했다. 
내일 이사는 잘 하겠지 뭐, 무거웠던 마음이 싹 사라졌다. 

우리는 Good night 인사를 하고 잠들었다.